10:00
여름을 흔적도 없이 치워야 하는 날로 지정했다. 했다기보단 하게 됐다. 더 이상 반팔을 여러 겹 껴입는다고 보온이 될 기온이 아니다. 겨울옷을 꺼내야만 한다. 그러려면 일단 옷방 바닥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왜냐하면 박스에 담겨있는 겨울옷을 옷방 바닥에 쏟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여름 옷을 박스에 넣을 수 있다.
옷방 청소를 끝내고 겨울옷을 바로 쏟아낼 수 있냐 하면 그것도 불가능이다. 반년간 쌓여있던 박스와 박스가 쌓여있던 곳도 청소를 해야 한다. 오래된 먼지들이 함께 나와 다시 옷방 바닥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차례 대청소가 끝나면 조금 쉬어야 한다. 테트리스 조금 했는데 한 시간이 흘렀다. 이쯤 되면 다시 동남아 타령이 시작된다. 손바닥만 한 옷장으로도 충분한 나라에 살고 싶다. 대체 한국은 어떻게 생겨먹은 나라인지, 여름엔 쪄죽을 만큼 덥고 겨울엔 얼어 죽을 만큼 춥네. 뭐 궁시렁거린다고 달라질 게 있나. 해내야지.
12:00
책상 밑에 쌓여있는 박스를 꺼내서, 박스에 담겨있는 겨울옷을 옷방 바닥에 쏟아냈다. 그래야 여름 옷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꺼내진 겨울옷은 선별작업을 거친다. 바로 입을 수 있는 옷, 빨아야 하는 옷, 버려야 하는 옷. 버려야 할 옷은 대체 왜 보관을 한 걸까? 하긴 일주일 전의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반년 전의 내가 이해될 리가 없다. 빨아야 할 옷은 세탁기로 직행한다. 그제야 빨래건조대 두 개가 풀로 차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세탁을 시작하고 널려있는 말린 옷가지와 수건을 갠다. 일주일의 흔적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빨래 개는데만 30분이 우습게 흘렀다. 왜 집을 치워주시는 분을 고용하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곤 이내.. 나를 고용한다. 아직은 고용인이 되기엔 무리다.
텅 빈 박스 네 개, 바닥에 널브러진 겨울옷들, 갓 개어진 옷들이 옷방, 거실, 안방에 조금씩 퍼져있다. 다음 작업은 옷장과 서랍장 안에 있는 여름 옷을 빈 박스에 담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겨울옷들과 개어진 옷들을 수납할 수 있을 것이다. 세탁기에 찍힌 시간이 2시간이니까 2시간 안에 해내는 걸 목표로 잡았다.
14:00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라고 세우는 게 분명하다. 점심 먹을 시간이 됐다. 배가 고파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대충 컵라면을 먹으려고 물을 담는데 식탁에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고 손을 뻗다 컵라면을 떨어뜨렸다. 오랜만에 육성으로 욕을 했다. 다행히 거실로 내놓은 옷들에는 튀지 않았지만 예정에 없던 부엌 바닥 물청소를 했다. 세탁기에서는 세탁이 끝났다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14:30
나머지 옷가지들을 넣고 세탁기를 돌렸다. 다시 2시간이 찍혔다. 첫 번째 세탁에서 나온 옷들을 널었더니 30분이 금세 흘렀다. 이제 한 시간 반 안에 옷 정리를 끝내야 한다. 그래야 옷방에 빨래 건조대를 하나 더 세워 빨래를 널 수 있다. 하.. 오늘 계획은 여유롭게 편집을 하는 거였는데 지금 높은 확률로 집안일 만으로도 야근각이다. 이 와중에 두려운 예감이 엄습했다. 곧 또 배가 고파질 것 같다.
16:30
옷을 이제 막 다 갰는데 또 세탁기에서 음악이 나왔다. 아직 옷들을 옷장이랑 박스에다가 못 넣었는데.. 일단 거실에 놓아둔 박스를 안방으로 옮기고 빨래들을 거실에다 널었다. 배도 고픈 것 같은데 다른 걸 치우느라 미뤄둔 설거지를 보니 배가 안 고파졌다. 웃음이 나온다.
18:00
몸살 나면 안 된다고 같이 하자는 A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A가 잠깐 사교 활동을 나간 사이,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을 벌여놓긴 했는데 아무래도 마무리는 못할 것 같다^^. 바닥 청소도 또 해야 할 것 같고 중구난방으로 들어가 있는 옷들을 꺼내기 좋게 다시 넣는 건 같이 해야 할 것 같다. 테라플루 먹고 즉시 취침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