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제2 외국어로 스페인어를 선택했다.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렇게 네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꽤 계산적이었던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자리 잡고 살려면 영어 다음으로 많이 쓰는 언어를 배워놔야 살기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기쁨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고, 막상 배우기 시작하니 너무 재미있었다.
스페인어는 한글과 비슷하게 단어의 뜻을 몰라도 발음만 알면 읽을 수 있는 언어다.
한창 영어로 고생하던 시기에 그나마 읽는 거라도 수월한 언어였어서 그런가 스페인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스페인에 대한 로망이 생긴 건 시에스타 때문이었다.
낮잠이 문화라니!
한 번도 다른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꼭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3-4년 정도 했나? 꽤나 능숙해질 즈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마음을 까맣게 잊고 살았고 대학을 다니면서 여행이 삶인 친구와 절친이 되었는데,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후 나에게 스페인에 가면 좋아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친구가 스페인을 왜 좋아하는지도 물어보았었는데
낮잠을 자는 나라라면 나와 템포가 맞을 것 같다고 대답했었다.
이후 친구는 발리에서도 오래 지냈었는데
내가 발리를 좋아할 것 같으니 자기가 발리에서 지내고 있을 때 한 번쯤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갔다.
역시나 좋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묵고 있던 숙소의 수영장에서 몸에 힘을 쫙 풀고 둥둥 뜬 채로 꼭 스페인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5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나의 절친이 곧 스페인으로 떠난다.
나는 분명 스페인을 좋아할 것이다.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이제는 정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