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모든 건 결국 0에 수렴한다는 것에 깊이 공감한다.
어릴 때는 지킬 걸 만들고 싶지 않아 아득바득 도망 다니며 살았다.
하다못해 책 한 권을 못 샀다.
책임지지 못할 일을 만들어놓고 사과를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그 무게에 내가 짓눌려버리는 게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아예 그럴 일을 만들지 않았다.
심지어 당연히 지키지 못할 큰 포부를 이리저리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이렇게나 어리석다.
한심하게 여기던 사람이 나의 미래가 될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요즘은 말하는 족족 다 지키지 못하면서 살고 있다.
버거운 목표를 잔뜩 남발하고 꾸역꾸역 해낸다.
옛날이었으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해나갈바에 안 하고 만다며 허세를 부렸을 것이다.
지금은?
안하는 주제에 말이 많아라며 일갈하겠지.
급하게 퇴근해서 두시간 반짜리 정신 상그러운 영화를 봤다.
밤이 늦어 서둘러 집에 돌아오는데 헛웃음이 났다.
정신없이 이게 뭐하는 건가 싶다가도, 너무 정신 있게 살았으니까, 좀 없게도 살아봐야지 않겠나 생각했다.
한참을 마이너스로 살다가 이제 좀 0이 되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