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을 하는 날은 특히나 시간의 왜곡이 심하다.
심리적 요인이 작동하는 게 확실하다. 사무실에서는 나도 모르게 긴장도가 높아진다. 집중력이 쉽게 깨지고 목도 마르고 화장실도 가고 싶어진다. 퇴근도 해야 하니 오후 시간대는 그래도 한 번씩 의식적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그렇다고 시간이 더디게 가진 않는다. 재택에 비해 느리다는 거지 사무실의 시간도 당황스럽게 빠르다.
반면 집에서는 무의식적으로 편안하다. 침대에서 눈을 뜨면 그대로 몸을 일으켜 의자에 가져다 둔다. 그리곤 의자에 축 늘어져 앉는다. 그러면 관성으로 하던 일을 하게 된 다. 스튜디오 예약이 있거나, SNS알림이 오거나, 메일이 오지 않는 이상 시간을 볼 일이 없다. 왜인지 모르게 배꼽시계도 둔해지는 느낌이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다고 잠깐 정신을 차렸다가도 집에 돌아와 의자에 앉으면 다시 급행열차를 타는거다. 저녁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퇴근할 일도 없으니 더욱더 시간에 소홀하다. 블랙홀이 따로 없다.
오늘은 정확히 점심시간을 알리는 슬랙 알림 덕분에 11시가 된 걸 알았고, L이 파트너사에 보내는 흥미로운 메일 덕분에 5시가 된 줄 알았다.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는 것보다야 낫지만 오늘은 시간이 빨리 흐른 게 아니라 사라진 느낌이 들어 문득 섭섭했다.
나이km로 시간이 흐른다는데 작년이 한 40km였다면 올해는 50km로 가는 것 같다. 미리 시간이 빨리 흐르는 만큼 정작 40대 50대가 되어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 따분하다는, 복에 겨운 불평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