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은 가게의 흥망성쇠가 빠른 동네다.
오랜 시간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가게들이 눈에 띄는데 오늘은 ‘맛있는 PC방’이 보였다.
PC방이 맛있다니.
요즘은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따지고 보면 말이 안 된다.
빠른 PC방, 쾌적한 PC방, 편한 PC방 이런 형용사들이 훨씬 어울리니까.
라면 맛집은 PC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PC방은 더 이상 컴퓨터만 하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만약에 나였더라면 고객의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라면 끓일 생각을 할 수 있나?
있었더라도 실행하기로 했을까?
계산부터 했을 것이다.
라면의 원가,
끓이고 치우는 인건비,
10%의 확률로 엎질러서 수습하는 비용,
음식 냄새 환기,
맛이 없다는 고개의 클레임,
라면을 끓이느라 응대하지 못해 놓치는 손님,
키보드나 컴퓨터에 쏟을 수도 있으니 새 제품 구입 비용도 마련해야 하고,
수지타산이 맞으려면 라면을 시키는 고객이 하루에 100명쯤 되어야 할 것 같은데,
100명을 유치하기까지 6달이 걸린다면 투자액이 얼만지 BEP는 언제 달성할 수 있는지,
PC방이 컴퓨터 하는 곳이지 라면먹는 곳은 아니잖아?
본질을 잃는 거 아냐?
분명 나는 다른 업체가 라면 마케팅을 통해 안정권에 접어드는 걸 목격해야만 뒤이어 따라 하는 PC방 사장이었을거다.
그렇다면 나라면 뭘 했을까?
기계식 키보드로 교체,
그래픽 카드 교체,
더 오래 앉아있을 수 있게 퍼플 방석 깔기,
이런 식의 이용 환경 개선과 관련된 그리고 여차하면 수습할 수 있는 선택들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지금쯤 당근마켓에 사업을 접는다며 중고로 판매 하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혹시 비디어스나 필름업도 이런 선택들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라면 같은 방법이 분명 있을 텐데.
오히려 라면을 팔아서 마련해야 할 것들을 미리 해놓고 버겁고 있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