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9월 15일

여왕의 귀환

By In DAILY

2018년을 기점으로 호시절을 청산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초가을 새벽이었다.
박소를 파는 식당에 들어가 친구들이랑 각자 한 그릇씩 뜨끈하게 먹고 곧장 집으로 돌아갔었다.
처음으로 이렇게 놀았다가는 죽겠다 생각했고 바로 관뒀다.

자리를 잡고 난 이후에는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가 얼추 정리될 즈음엔 같이 놀 친구가 없었고, 추억을 꺼내 먹으며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랬는데.
트랜스에서 30주년 기념 드랙 콘서트를 연다는 게 아닌가.
내 ‘왕년에~’ 이야기를 흥미로워하며 한번은 가보고 싶다고 했던 A를 부담 없이 데려가 볼 기회가 생겼다.

트랜스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드랙쇼를 하는 공연장이다.
드랙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드랙은 라이브 공연의 한 장르다.
뮤지컬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레베카로 예를 들어보겠다.
뮤지컬은 공연 하나에 스토리라인이 있고 여러 배우가 나와 다양한 뮤지컬 넘버를 부른다면,
드랙쇼는 공연 하나에 덴버스 부인이 여러 명 나와서 메인 넘버만 부른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옥주현 님이 공연 내내 주구장창 레베카만 부르고 있는 거다.
그래서 드랙쇼를 좋아한다.
모든 드랙퀸들이 매번 전력을 다해 자신의 끼를 분출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숨가쁘다고 할 수 있겠다.
근데 나는 그게 좋다.
그 기운으로부터 벅차오름을 느낀다.

백문이 불여일견.
당시 친구와 함께 챙겨 보던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라는 시리즈고, 드랙에 빠지게 된 계기다.
아래 세 영상은 그중 가장 좋아했던 공연들이다.
심지어 김치라는 드랙퀸(2번째 영상 주인공)은 내한도 했었고, 직관했다.

저번달에 신청을 해뒀는데 언제 한 달이 흘렀는지 까맣게 잊고 있다가, 마음의 준비도 못 한 채 후다닥 출발했다.
시작 시간이 7시 30분이었는데 거의 딱 맞춰 도착했다.
스탠딩 공연이다 보니 막차를 탄 우리는 맨 뒷줄에 서게 되었고 관객의 뒤통수만 질리게 보다 왔다.
하지만 문득문득 보이는 드랙퀸들의 손짓과 표정의 일부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게 즐거웠다.

이걸 어떻게 30년을 해올 수 있었을까?
이 세상의 모든 요란스러움을 한데 모아 정신없이 시끄러운 와중에,
어딘가 모르게 고달픔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짠하기도 했다.

Written by hershey

안녕하세요 걀걀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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