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 다이어리>이후 8년만의 고레에다 히로카즈였다.
1.
감이 좋은 사람은 포스터만으로도 알아챈다는데 나는 몰랐다.
줄거리를 찾아보지도 않으니 더더욱 몰랐다.
영화는 3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3막으로 갈수록 기운이 좀 빠진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모르고 봐도 즐길 거리가 충분한 영화였다.
2.
희미한 오해가 쌓이면 선명한 편견이 된다.
편견은 주로 부정적인 감정에 기인하고 편견이 불러일으키는 재앙은 대부분 분노에서 촉발된다.
세상만사가 배배 꼬이는 이유는 결국 분노 때문이 아닐까.
분노를 다스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 분노가 입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주의해야지.
3.
다른 이야기를 하느라 영화 내에서 자행되는 여러 가지의 폭력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수습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걸까?
아니면 폭력이 만연한 세상을 풍자하는 걸까?
4.
당돌한 나무늘보한테 제대로 반했다.
아빠가 다니는 룸싸롱에 불도 지를 줄 아는, 벌써부터 통이 큰 아이다.
죽도록 맞을 걸 알면서도 진실을 말해야만 하는 용기도 멋지다.
온갖 수모를 겪어도 굴하지 않는 그의 기개가 어른스럽다.
게다가 로맨틱하기까지 하니, 성인의 그가 실존했다면 분명 짝사랑했을 것이다.
5.
진실은 잔인하다.
따라서 진실을 품을 만큼 그릇이 크지 않으면 결국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하게 되는 거짓말은 오해를 필연적으로 부르고 결국 나를 향해 돌아온다.
어떠한 진실을 맞닥뜨리게 돼도 품을 수 있도록 그릇을 키워야 한다.
그게 그나마 세상 풍파를 덜 맞는 방법일 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여름 판타지스러운 느낌이 갑자기 추워진 겨울 날씨와 찰떡이었다.
괜히 더 그리운 것 같고 아스라이 멀어진 추억 같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