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되면 내려간다 했는데 정말 대구에 내려왔고 지금은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이다.
경주나 천안같이 가족을 보러 가는 것 외에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을 가본 건 작년 부산 이후로 오늘이 처음이다.
영화제의 기억이 부산에 머무르지 않았으면 해서 이번 기회에 내 체력만 괜찮다면 대구에 꼭 가고 싶었다.
출발할 때는 조금 망설여졌지만 하기로 했으니 마음을 먹고 그냥 몸을 움직였다.
대구행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이어폰을 노트북에 연결하고 늘 듣던 음악을 틀었다.
마치 오늘과 지금이 아무 날도 아닌 것처럼, 집에 있었다면 하고 있었을 것들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니 그런 것만 같았다.
영화제 상영 시간표를 업데이트하며 다음 갈 곳도 정했다.
당장 이번 주 주말 개최되는 원주옥상영화제는 너무 늦은 시간에 상영을 해서 올해는 고사하고, 다다음 주에 춘천영화제에 당일치기로 다녀와볼까 생각했다.
기차는 부지런히 달려 나를 대구로 데려다줬다.
동대구역은 언제나 경주역에 도착하기 위해 지나치는 역이었는데 내려본 건 처음이었다.
길치답게 같은 곳을 세 번쯤 뱅뱅 돌고 나서야 출구를 찾았다.
안 그래도 긴장했는데 등짝과 가슴팍이 폭싹 젖었다.
무사히 극장에 도착해서 모자이크, 점의길, 호수, 소녀탐정 양수린, 이렇게 총 네 편의 단편영화를 봤다.
GV까지 열심히 들었다.
감독님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는지(영화를 만드는지) 들었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생각이 골치 아파지는 날이 올까?
그전까지는 있는 힘을 다해 생각해야겠다.
극장밖으로 나오니 처음보는 밤거리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집으로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대구역에 도착해서는 허기가 져서 롯데리아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양념 감자 먹을 생각에 들떴는데 사이드 메뉴 말고는 드실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래도 드시겠냐는 점원의 말에 포기했다.
원래 내가 먹으려 했던 메뉴가 사이드 메뉴긴 했지만 이미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 시점에 먹었다가는 체할 게 분명했다.
그러냐 하고 좋은 밤 되시라 했다.
옆에 배스킨라빈스가 있어 곧장 들어갔다.
가장 달아 보이는 메뉴로 주문했고 바깥바람도 쐴 겸 나왔는데 두 입만에 홀라당 떨어뜨렸다.
역사 안에서 떨어뜨린 게 아니라 다행이다 생각하며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쥐어다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이스크림 촉감놀이는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며 지저분해진 손을 닦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기 세면대만 비어있길래 엉거주춤하게 주저앉았는데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떨어졌다.
환-장
비누로 휴대폰 케이스를 벅벅 닦았다.
덕분에 허기가 가셨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바로 노트북을 펼쳤다.
물론 이어폰을 꽂은 채로.
어떤 하루를 보냈나 하나씩 떠올리며 글을 쓰는데 벌써 곧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음성이 들린다.
참 별거 아닌데.
해보고 나니 무엇이든 더 할 용기까지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