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8월 04일

평양냉면은 야근을 부른다.

By In DAILY

오랜만에 뚜벅이 데이였다.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이다.
그저 퇴근하는 사람1이 되기엔 아쉬웠다.

무더위가 지속되는 오늘 같은 날 근사한 저녁으로 어울리는 메뉴는 뭘까 고민하다 회사 바로 앞 우래옥을 가기로 했다.
겨우 500미터 남짓한 거리를 걸어가는 데 티셔츠가 앞뒤로 폭싹 젖었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대기자 56명.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돌아 나왔다.
이미 평양냉면을 먹기로 한 이상 포기할 수 없다.
늘 가던 을밀대 무교점까지 걷기로 했다.
네이버 지도에 28분이 찍혔다.
따릉이를 타기로 했다.
7분이 찍혔다.
할만하다.

누구는 걸레 빤 물 맛이다, 북한 사람들도 그렇게 닝닝하게는 안 먹는다, 간을 하고 먹어도 평양냉면을 먹을 줄 아는 놈이다 등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왜냐하면 평양냉면은 정말 맛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이런 부연이 많은 걸까?
고수도 그렇고.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을 좋아하면 뭔가 은근한 아니꼬운 말을 듣게 된다.
먹으라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못찾겠다.

따릉이를 주차하고 나니 얼굴이며 등이며 땀이 줄줄났다.
냉면 먹기 최적의 상태가 되었다.

공덕역에 있는 을밀대 본점은 우래옥처럼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갈 수가 없다.
아무래도 맛집은 구옥, 세월이 느껴지는 벽지, 열악한 좌석 배치 뭐 이런 것들이 필요한가 보다.
을지로에 있는 을밀대는 맛집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빌딩의 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갈 때마다 한산하다.
우래옥의 웨이팅을 보고가서 설마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사람이 많을까 걱정했지만 유독 더 텅 비어있었다.
(모쪼록 오래오래 장사해 주시기를 바란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테이블에 앉음과 동시에 주문했다.
물냉 2개 녹두전 1개.
아직 어른이 아니어서 4만 원이나 하는 수육은 곁들여먹는 메뉴로 못 시키고 있다.
부자가 되면 4만 원짜리 소자 말고 8만 원짜리 대자로 푸짐하게 먹어야지.

물 대신 가져다주시는 뜨거운 육수에 후추도 야무지게 뿌려서 홀짝이니 갈증도 싹 가셨다.
그렇게 냉면이 더 맛있을 수 있도록 예열을 하고 있다 보면 금방 음식이 나온다.
숟가락이 없기 때문에 그릇째 들고 살얼음이 동동 뜬 육수를 마신다.
을밀대는 간이 좀 되어있어서 배고픈 상태로 가면 꽤 자극적이다.
면은 메밀면인데도 쫄깃하다.
구수함은 말할 것도 없다.
먹고 왔는데도 또 침이 고여 턱이 아프다.
완벽한 저녁이었다.

사람은 진짜 단순한 동물이다.
기분이 좋아지면 온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없던 힘도 솟아난다.
할 일이 조금 남은 채로 찝찝하게 퇴근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뚝딱했다.
일 효율이 안 나면 일을 꾸역꾸역 할 게 아니라 기분을 좋게 만드는 걸 찾아야 할까 봐.

Written by hershey

안녕하세요 걀걀걀
2 Comments
  1. 지니어스 2023년 08월 08일

    무교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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