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26일

패트와 매트

By In DAILY

우리 집은 거실에 큰 책상 두 개가 놓여 있고 나와 A는 거실에서 일을 한다.
오늘은 재택을 하는 날이었다.

점심 먹기 직전 전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처음 한 두번은 무시했다.
그러다 사이키 조명이 되니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어서 교체하기로 했다.

거실 등은 꽤 커서 길쭉이 전구가 4개나 들어간다.
너무 밝아서 1번, 2번, 3번만 넣고 4번 자리를 비워놨는데 그중 3번이 난리가 났다.

하필 전등이 나사를 조여 닫는 식의 디자인이다.
등 하나를 갈래도 최소 2개 이상의 나사를 풀어야 한다.
어쩜 또 갈아야 할 전구는 나사를 4개나 풀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3분의 1의 확률인데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우리 집 물품 담당 A는 전구를 미리 여러 개 사놨다.
(맥시멀 리스트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전구를 갈고 점심 먹으러 가는 김에 폐전구함에 수명을 다한 전구도 버렸다.
이렇게 깔끔하게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그랬다면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겠지.

저녁을 먹고 일을 마무리하려는데 다시 사이키 조명이 부활했다.
진짜 이런다고?
이번엔 1번 전구가 깜빡인다.

다행히 1번 전구는 나사를 2개만 풀면 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다시 뚜껑을 열어 또 다른 새 전구(맥시멀 리스트 짱!)를 끼워 넣었다.

맙소사.
새 전구도 깜빡 거린다.
말도 안 돼.
새 전구가 불량인가 싶어 테스트를 하기 위해 4번 자리에 끼워보기로 했다.
그러려면 또 나사를 풀어 뚜껑을 열어야 한다.
다행히 나사가 2개인 자리다.

4번 자리에 끼워 넣었더니 더 이상 깜빡거리지 않았다.
행복했다.
이 정도 고난은 에피소드용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갑자기 괜찮던 3번 전등이 깜빡거린다.
아침에 갈았던 그 전등이.

썅!

나사 4개짜리 뚜껑도 결국 다시 열었다.
새 전구가 끼워져있는 3번 자리에서 전구를 빼내 1번 자리에 다시 끼워봤다.
깜빡거렸다.
문제는 전등이 아니라 소켓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아침에 버렸던 전구가 수명을 다한 전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인 거다.

낙담할 시간은 없다.
뚜껑을 닫아야 한다.
전등 뚜껑은 왜 이렇게 또 무거운지.
내내 뚜껑을 들고 있던 A는 잠깐 쉬자며 팔을 내렸다.
우스갯소리로 그냥 뚜껑 없이 살자고도 했다.
그럴 순 없다.
둘 자리가 있으면 그러자고 할 것 같은데 식탁에 놓여있는 전등 뚜껑을 보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끝내 전등 뚜껑을 닫고, 전구 하나가 빠진, 한층 어두워진 거실에서 A랑 배를 잡고 킬킬댔다.
오늘 도합 한 시간 동안 생쑈를 했다.
이거 진심 브이로그 감인데 아쉽다며, 오늘도 일류처럼 고난을 웃어넘겼다.
하하.

Written by hershey

안녕하세요 걀걀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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