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알고리즘에 허준이 수학자의 유퀴즈 인터뷰가 떴다.
나는 유퀴즈를 잘 챙겨 보는 편이지만 크게 즐기지는 않는다.
유재석 님이나 조세호 님이 인터뷰이의 생각을 끌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지루하기 때문이다.
인터뷰이가 그들의 질문에 허를 찔리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엔 흥미가 식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편은 달랐다.
단편적인 예로,
난제와 같이 공부에 몰두하는 시기에는, 같은 옷만 입고 루틴한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시기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라이프 스타일을 단순하게 만드는 이유는, 새로운 걸 한다는 것 자체가 자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극이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새롭게 피어날만 여지를 앗아가는 것 아닌가 싶어서였다.”
같은 옷만 입는 천재는 허준이 수학자 말고도 많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일론 머스크가 바로 생각난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선택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자극이 피어날만한 여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함’과 ‘선택 비용을 줄이기 위함’은 같은 얘기인 동시에 차원이 다르다.
왜 선택 비용을 줄이려고 했지?
덜 고민해서 시간을 아끼려고?
왜 고민을 줄여 시간을 아끼려고 했지?
고민하는 몇 초의 시간을 줄이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낄 다른 방법을 많을 텐데? 등과 같은
수많은 질문들을 곱씹어 답을 낸 후 문장으로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이렇게 질문을 거듭하여 근본적인 원인, 어쩌면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코어 이유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순수학문을 공부한다는 건 결국 철학을 공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글을 예전에 읽었는데, 오늘에서야 정확히 이해가 됐다.
그 외에도 서로와 자신에게 친절한 게 궁극적으로 어떠한 의미인지,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어려운 정신적 과제에 도전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인데,
사실 이건 어느 분야에서든 적용이 되며,
수학은 인간이 만든 가장 정교한 언어이자 생각을 보존할 수 있는 장치라고 설명하는 등
그의 답변들은 생각이 뒤따르게 만드는 말들이었다.
겨우 20분짜리 인터뷰 하나를 보는데 그가 밟은 생각의 길을 따라가보고 싶어서 더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아마 내 생각의 길이가 훨씬 짧아서 다 이해하지도 못했을 거다.
철학을 가진 사람이 가진 무게감과 정돈된 바이브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나도 나만의 사전을 부지런히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되었을 때의 인생은 지금보다도 훨씬 풍부할 것만 같다.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사람은 처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