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스튜디오 문의 전화가 와도 떨리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공포를 극복했다기보다는 배 째라 모드가 설치됐는데 결론적으로 극복한 꼴이 됐다.
긴장하면 잘 못 알아듣는 편인데, 전화는 특히나 생방송 같은 느낌이라, 한 번에 알아들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오히려 더 긴장을 하게 되고, 그러면 더더 못 알아듣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심지어 아무 말도 못 알아들었는데 그냥 알아들은 척 네~ 네~ 대답했다가 TV 서비스에 가입돼서 청구서가 날아온 적도 있었다.
전화는 되묻기도 죄송스럽다.
어차피 되물어도 잘 안 들려서 못 알아듣기 때문이다.
초반에 스튜디오 문의 전화가 오면 노심초사했다.
행여 못 알아듣는 게 있어 안내를 실수할까 봐 걱정했다.
실제로 못 알아들어서 짜증 낸 사람도 있었다.
주차관련 안내를 했어야 했는데, 차를 무사히 댔다는 줄 알고, 별다른 피드백을 하지 않았다가 벼락을 맞았다.
이런 일이 몇 번씩 반복되니까, 익숙해진 건지, 매너리즘이 온 건지, 될 대로 돼라라는 마음이 실제로 장착됐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내내 콩닥콩닥했었는데 드디어 업그레이드가 됐다.
이제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심호흡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전화가 와서는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여보세요를 기대하고 전화를 받아서 그런지 첫 마디를 못 알아 들었지만,
별일 없이 예약까지 하시고 끊었다.
재단에서 일할 때는 그렇게 전화를 해도 극복이 안되더니,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안되던 게 되네.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