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아직 어른처럼 굴기에는 어리다고도 생각했고 그래야 하는 순간이 와도 피했던 것 같다.
쑥쓰럽기 때문이다.
입버릇처럼 평생 막내이고 싶다고 하는 말은 100% 진심이었다.
그래서인지 야속하게도, 더 빨리 어른 노릇을 해야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나 보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상대의 미숙함을 야단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야단이라고 해서 꾸짖고 계몽하는 그런 게 아니라,
상대에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선행되어야 하는 마음이 있다.
상대의 실수나 잘못에 내가 크게 동요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에 동요된다면 그건 아직 내가 꾸짖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까지도 은은하게 동요가 되어, 동요가 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게 나에게 가장 큰 화두였다.
어른이 되고 싶어서 방법을 찾으려 했던 건 아니고, 피곤하니까 무심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방법을 찾고 나니 갑자기 새로운 감정이 느껴졌다.
동요가 되는 상황에서 내가 주로 느끼는 감정을 ‘화’로 분류했었다.
분노와 결이 비슷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노의 크기가 작을 뿐이라고 인지했는데,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애가 타는 마음이었다.
멀리 돌아가고, 잘못하고, 실수하는 걸 보면 그러지 말라고 말을 하고 싶어서 애가 타는 마음이 드는 것과,
화가 나서 마음이 타오르는 것이 비슷해서 구분할 줄 몰랐다.
언젠가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에서,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으으으~’와 같은 의성어로 모든 걸 퉁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고 오은영 박사님이 말씀하셨던 게 떠올랐다.
왜냐하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니까, 감정을 명확히 자각할 수 없게 되고, 감정의 구분이 어려워지면,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으니, 떼를 써버리거나 짜증만 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화가 나는 기분, 무엇인가 만족스럽지 않은 기분, 피곤한 기분 등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해소할 방법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게 유아기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솔루션인 줄 알았는데 계속 키워내야 할 부분이었나 보다.
감정을 하나 터득하고 나서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고 나니 문득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어른처럼 굴어야 할 때 멋쩍었던 건, 도긴개긴이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쪼끔 더 철난 거 가지고 유세를 떨려고 하니 당연히 쑥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갈 길이 참 멀고도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