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사회인이 되던 시점부터 워라밸이 유행했다.
워가 아직 라를 침범하지 않은 때부터 밸런스를 지키려고 얼마나 날카롭게 굴었는지 모른다.
밸런스가 무너지면 삶이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그때는 뭔지도 모르면서 무서웠다.
무지한 상태에서 워라밸이란 개념이 정립되었지만 다행히도 천성 자체가 적당히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조용한 퇴사자’ 타입보다는 진짜 워라밸이 필요해지는 일꾼으로 자라났다.
그러면서 부자라는 개념이 돈이 많은 게 아니라 시간이 많은 거란 것도 빨리 알게 되었다.
일을 미친 듯이 많이 하면 돈이 많이 벌리는 걸 경험했는데 막상 시간이 없으니 무용지물이었다.
게다가 시간뿐만 아니라 체력도 트레이드오프 되는 조건이라는 걸 건강을 잃으면서도 몰랐다가,
도저히 일을 못할 지경이 되어 눈앞에서 돈을 놓치고 나서야 체감할 수 있었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니 당연히 사업을 해야 한다로 결론이 났는데, 사업을 한다는 건,
그러니까 시간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한다는 건,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 나의 모든 시간을 레버리지로 당겨써야 한다는 뜻이었다.
몇 달 몇 년을 바짝 당긴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먼저 시간을 일에 할애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딱 떠서 집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빨래 바구니는 두 개가 가득 차 있고, 싱크대에는 그릇들이 쌓여있고, 식탁에는 마신 물컵들이 전시되어 있고, 바닥은 퍼석퍼석했다.
이런 것들이 눈에 띄면 갑자기 앞/뒤 베란다나 냉장고 같은 곳까지 몽땅 청소가 하고 싶어진다.
오늘은 이소라 콘서트가 있는 날이라 성미를 죽이기로 했다.
일단 설거지부터 하고 빨래는 바구니 하나만 돌려서 널고 나머지 하나는 콘서트가 끝나고 돌아오면 끝나있을 수 있게 예약을 걸어놨다.
퍼석한 바닥은 내일까지 잠깐 흐린 눈을 뜨기로 했다.
사실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콘서트를 가는 게 맞나?였는데 막상 콘서트를 가지 않았다면 저저번주처럼 폭주를 하고 몸살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워라밸을 갖기 위해 워라밸을 버려야 하는데 그 와중에 워라밸을 챙겨야 진짜 워라밸에 도달할 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