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지겹도록 듣는 말일 거다.
부자가 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종합해 봤더니 부자가 되어야 한다로 귀결된다.
그래서 부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이유들 중 K-장녀스러운 이유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예를 들면 대낮에 엄청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서 해를 원하는 만큼 쬐고 앉아있는다거나, 평일에 사람 없는 시간대에 전시를 보러 간다거나, 즉흥적으로 영화관에 가서 아무 영화나 보고 나온다거나 이런 종류의 것들을 하고 싶다.
지금도 하면 되지 않냐고?
포인트는 허겁지겁 돌아와야 할 현생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오히려 일은 꾸준히 하고 싶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절부절못하는 일 말고 사이드 프로젝트나 작당모의 같은 일만 하고 살고 싶다.
그러니까 한살이라도 어릴 때 내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은 거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젊음, 시간, 돈이 엇박자로 온다는 걸 피부로 느끼면서부터다.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지만 고기를 1kg씩 먹던 시절이 있었다.
돈이 없어서 주로 9,900원짜리 노브랜드 1kg 냉동 삼겹살을 사다 구워 먹었다.
학교 앞에 있던 토마토 마트는 수요일마다 한돈 삼겹살 세일 행사를 했었는데 거의 매주 한 근을 10,900원에 사 먹었다.
얼마나 자주 갔냐면 내가 마트에 들어설 때 정육점 사장님이 고기를 자르기 시작하셔서 정육점 코너에 도착하면 딱 들고 바로 계산대에 갈 수 있을 정도의 호흡을 자랑했다.
이랬던 나였는데 이제는 배부를 만큼 고기를 사 먹을 수 있는 재력을 가졌지만 더 이상 그렇게 먹을 수 없다.
심지어 고기가 소화도 잘 안돼서 자주 먹지 않는다.
언젠가 내일로 여행도 해보고 싶었다.
혼자 갈 용기도 없었고 일을 계속해야 하기도 했었다.
그랬더니 어디 한 군데 가본 곳 없이 나이만 먹었다.
지금은 용기도 생겼고 하기만 하면 되는데 체력도 부담스럽고 언젠가 끝날 줄 알았던 일은 무게만 점점 더해지는 것 같다.
펑펑 놀기만 했던 시절에 간 발리가 행복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인데,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 없을 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때 알았다.
물론 0으로 향해가는 잔고에 다시 머리채 잡혀 현생으로 복귀하긴 했지만 어떤 목표로 살아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어쨌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깔끔하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스페인을 다녀오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한 거다.
이런저런 부담감들을 잘 이고 있을 줄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다만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었을 때 수요일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컨디션이었다면 무조건 더 행복한 푸드라이프를 즐길 수 있었던 건 확실하다.
젊음과 시간 그리고 돈이 여유로웠다면 안 가 본 곳도 없이 다 다녔을 거고 일도 지금과 다르게 더 과감한 시도와 모험을 해볼 수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부자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