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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이폰
혁신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제품은 아이폰이다.
나는 아이폰 출시 당시 미국에 있었고, 구매력이 낮아도 유행에 민감한 10대였기 때문에 아이폰 열풍을 몸소 느꼈다.
친구들 대부분 아이팟을 갖고 있었는데 하나둘씩 아이팟이 아이폰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팟이랑 휴대폰을 합쳐서 오히려 편해졌다면서 이질감 없이 아이폰으로 넘어갔다.
스마트폰이란 개념이 처음 생겼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즉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알고 보면 아이폰도 익숙함의 메커니즘을 십분 활용한 제품이다.
아이폰이 out of nothing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게 아니다.
아이폰의 시작은 아이팟이었다.
노래 제목만 겨우 볼 수 있는 작은 디스플레이를 가진, 작아서 갖고 다니기 편하다고 광고하던 MP3 시장에서,
디스플레이가 큰 아이팟이 처음 나왔다.
화면에 앨범 재킷 사진을 띄울 수 있게 했다.
예뻤다.
작은 게 어쩌면 메리트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게다가 예쁘면 쓰레기일법 한데 아이팟은 기능적으로도 뛰어났다.
당시 내가 쓰던 아이리버는 64MB여서 50곡도 채 못 담았었는데 아이팟은 4GB나 되었기 때문에 압도적으로 매력적이었다.
사람들은 디스플레이가 위에 있고 하단에 있는 버튼을 엄지로 조작하는 방식의 기계에 점점 적응하기 시작했다.
하단 동그란 버튼이 아이팟의 반절을 차지하는 게 너무 크지 않냐는 반응도 많았는데 크고 동그란 버튼은 기계 사용법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의도했던 걸까?
이후 출시된 아이팟에서는 버튼을 누를 수도 있고 터치로도 구동될 수 있게 했다.
동그란 버튼을 엄지로 동그랗게 따라서 쓸어내리면 다라락 소리와 함께 음악 셀렉터 영역이 움직였고, 음량 조절 역시 딸깍딸깍딸깍을 반복하지 않아도 스르륵 조절할 수 있었다.
처음엔 당연히 모두들 어색해했고 버튼을 눌러 사용했었지만 다들 금새 적응했고 나중엔 최대한 터치로 이용하고 버튼을 최소로 누르는 방식으로 아이팟을 이용하게 되었다.
아이팟 없이 아이폰이 혁신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을까?
버튼식 휴대폰밖에 없던 때에 혁신이라며 터치식 스마트폰을 출시했다면 수십 가지의 이용 방법 영상을 만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마저도 사람들이 보기나 했을까 싶다.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새로운 방식의 휴대폰을 판매하기 전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먼저 변화 시켜야 한다는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MP3를 휴대폰의 전 단계로 놓을 수 있었던 걸까.
참 시야가 넓은 사람이다.
현재 비디어스는 아이팟이라고 할 수 있는 기능을 준비 중이다.
창작자들의 구인구직 생태계에서 이메일 지원이 골칫거리인데,
MP3에 외려 와이드 스크린을 탑재하고 앨범 재킷 사진을 띄웠던 것처럼,
우리도 이메일 지원을 강화하고 앨범 재킷을 띄워보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해낸 앨범 재킷이 유효하길 바란다.
새로운 구인구직 생태계를 만들기 전 기존 생태계에 먼저 스며들 수 있길.
그나저나 필름업의 아이팟은 무엇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