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빠 물품 하나쯤은 갖고 싶었다.
반지랑 시계는 찰 수가 없어서 패스했고 그 외에는 딱히 가질만한 게 없었다.
설계 도면 그릴 때 쓰던 문구용품들은 쓸 일도 없고 속지 색이 노래진 수첩도 용도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아빠가 입던 나시가 눈에 띄었고, 사이즈가 안 맞아도 집에서 입으면 딱이다 싶어 갖고 올라왔다.
한 해나 두 해 정도 입으면 버리겠거니 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꺼냈다.
불멸의 나시다.
재질이 얼마나 좋냐면 헤지거나 빵구난 곳 하나 없고, 어깨쪽 이음새 부분 실이 뜯어진 정도가 다다.
심하게 오버사이즈지만 덕분에 통풍도 잘 된다.
여름만 되면 A와 은근한 신경전을 벌인다.
누가 이 나시를 옷장에서 먼저 꺼내 입느냐인데 이번엔 내가 졌다.
“너 왜 우리 아빠 나시 입어!”라며 강탈 작전을 펼쳐 보았으나 A는 시원해 보이는 차림으로 은근히 웃고 말았다.
분하다!
10년간의 검증을 통해 아빠 나시를 여름 집 교복으로 정했다.
프린팅된 글자를 검색해서 사진상으로는 똑같은 제품을 찾아냈다.
이제 진짜 똑같은 게 오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