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기를 정-말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환장할 정도로 좋아한다.
일요일인 오늘도 어김없이 풋살을 했다.
날이 좋아 그런지 풋살장 근처로 나들이 나온 가족이 있었다.
네 살짜리 꼬맹이랑 아직 손을 굽히고 펼치는 게 어려워 결국 나이를 알려주지 못한 기저귀를 찬 애기 둘이서 나비를 따라 풋살장 근처를 서성였다.
이 기회를 놓칠쏘냐.
낯선이의 관심이 혹시 불편할까 부모 되어 보이는 분들의 눈치를 먼저 살폈다.
아기들이랑 같이 나비를 쫓아다니는데 안심이 되신 건지 본인들은 정자로 가 앉아 우리들을 살폈다.
아기들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무턱대고 낯선 사람들에게 이름을 말하고 다닐까 봐 이름은 물어보지 못했다.
대신 나이를 물어봤더니 언니인 아기는 네 살이고 자기는 언니라고 소개했다.
동생 아기는 손을 꼼지락 대다 잘 안되는 게 조금 쑥스러웠던지 손을 뒤로 숨기고 보조개가 쏙 들어가게 씨익 웃고 도망갔다.
“이제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 늠름한 언니네!” 한마디 했더니 언니 아기는 어깨가 잔뜩 올라가 도망간 동생 아기를 데려왔다.
“이거 내 동생이에요.”라고 말해서 한바탕 웃었다.
아기들은 맑은 눈빛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눈을 그렇게 반짝일 수 있는지.
갓 세상에 나와 모든 것이 흥미롭기 때문일까.
말 그대로 때묻지 않은 눈을 보고 있으면 무장해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말들이 와닿지 않는 분들이 계시다면,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짤을 보시면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아실거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은 내가 진리처럼 생각하는 문장이다.
우스갯소리로 눈빛은 성형할 수 없다는 것처럼 그 어떤 곳보다도 내가 가장 열심히 가꾸려고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탁해지지 않게 정화를 하려면 항상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사는 데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다 보니 대다수는 쉬이 넘기는 것 같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내는 탁한 눈빛들만 보다가 모든 마음이 투명하게 비치는 눈을 보면 사랑해 마지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