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세차를 한지 거의 일 년이 넘었다.
여러 이유로 결국 자동세차만 해왔는데, 오늘만큼은 꼭 손 세차를 해야겠다는 A의 비장한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대신 세차 후 붕어빵을 꼭 사 먹기로 했다.)
그새 세상이 좋아진 건지 부스와 시간 단위로 결제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작년엔 세차를 오래 하면 할수록, 그만큼 돈을 지불하는 건데도 불구하고, 길게 늘어선 뒤 차들이 우리가 언제쯤 빠지는지 기웃거리는 바람에 마음이 황급했었다.
오늘은 2번 부스에 한 시간을 결제하고 느긋하게 세차를 시작했다.
밝은 조명 아래 놓인 우리 차를 보니 얼룩덜룩한 게 적나라하게 보였다.
며칠 전부터 봤던 세차 유튜버들의 조언을 떠올리며 하나씩 했다.
카 샴푸는 고압수로 거품을 풍성하게 내고, 폼 건을 뿌린 후 오래된 때들을 불리는 시간도 갖고, 자동차 하부를 닦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세차장으로 열몇 대의 차들이 들어왔는데, 처음엔 세차를 끝내고 나가는 차들인 줄 알았다.
첫눈에 지저분해 보이는 차가 단 한 대도 없었다.
자동세차를 하는 차들은 딱 봐도 세차를 해야 할 것처럼 보이는 차들이 많았는데, 번거로운 손 세차장에 오는 차들은 오히려 깨끗한 차들이라니.
지저분한 차들이 손 세차가 필요하고 깨끗한 차들은 자동세차로 충분할 텐데.
깨끗한 차들은 더 깨끗해지고, 지저분한 차들은 점점 더 지저분해진다.
가만 보면 세상 모든 게 이런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