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후 1시에 눈을 떴다. 세상에. 이틀 전에 돌아왔기 망정이지 사달 날 뻔했다.
하루도 이미 반절이 지난 마당에 일상으로 돌아가면 할 수 없는걸 하기로 했다. 사업을 시작하고서는 쉽게 하지 못했던 게 하나있다. 콘텐츠 정주행하기. 나의 유일한 취미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앞자리에 앉아있는 분이 보고 계시는 걸 뒤에서 훔쳐봤다. <더 지니어스>의 광팬이었던 내가 이런 쇼가 런칭됐다는 사실을 몰랐다니! 얼마나 팬이었냐면 X맨에 출연해야 할까 봐 연예인은 내 꿈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더 지니어스>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연예인이 되고 싶을 정도였다.
이런 종류의 쇼가 재미있는 이유는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머리를 미친 듯이 써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게 재미있다. 예를 들면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저 상황에서 내 목숨을 내놓고 남을 도울까? 아니면 내 생존을 위해 절친을 배신할까? 이건 그냥 게임이니까 미안한 마음을 한풀 접고 내 욕망에 집중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다. <더 지니어스>에서는 장동민님 같은 사람이고 싶었지만, 나와 가장 비슷한 플레이를 한 사람은 김경란님이었다. <데블스 플랜>에서는 하석진님처럼 하고 싶지만 박경림님과 비슷할 것 같다.
(아직 완결 전이긴 하지만) 압도적 리더가 있었던 <더 지니어스>와 다르게 <데블스 플랜>에는 느슨한 연합만 존재한다.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들로만 나뉜달까. 궤도님이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려는, 약자들의 리더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대의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대의를 강요하지 않는 동시에 본인의 희생이 따라야 하는데 결국 생존해야 하는 이곳에서 그는, 그 신념에 잡아먹히는 듯 보인다. 물론 궤도님 덕분에 플레이의 물이 강력하게 흐려지며 강자들이 맥을 못 춘다는 점에서 나이스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흔드는 사람과 흔들지 말자고 하는 사람, 그것에 흔들리는 사람과 흔들리지 않는 사람, 각양각색이 모여있다. 어떤 선택 하나만으로 판이 확 뒤집힐 수도 있고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불운이 펼쳐지기도 하며 그것을 전화위복으로 삼기도 하고 그 전화위복을 직접 목격하고 전혀 쳐주지 않던 사람을 제일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앞으로의 게임 진행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더 지니어스>와는 다르게 유토피아적 면모가 없어 쾌감은 덜하긴 하지만 나름 복잡하고 재미있다. 인간이 모여 만들어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한 미니어처 같기도 하다.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사람의 양심이기도 하지만 결국 기댈 수 있는 것도 양심뿐이라는 게.
아직 완결 나지 않은 시리즈이니 기다림이 싫은 분들은 10월 10일 이후에 보시면 되겠다.